정신분석-결정론, 대상관계이론

1. 정신결정론

 

 지정학설에 이어 정신분석에서 중요시하는 기본적 가설은 정신결정론이다. 우연한 것으로 보이는 인간의 어떤 행동도 특정한 동기와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이론으로,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인과론이다. 어른의 행동은 이미 어린 시절의 경험에 의해 그 동기가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정신 분석가 웨인쉘(Weinshel, 1987)의 증례

 30대의 유능한 사업가가 있었다. 그는 큰 회사를 경영하고 있었다. 그의 문제는 이것이었다. 사업상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었는데도 항상 실패한 사람처럼 패배감과 우울에 휩싸이는 것이었다. 그의 능력은 뛰어났고 인정도 받았지만 막상 그 자신은 자신감이 없다. 자기는 무능력을 숨기고 있는 위선자, 협잡꾼이라 생각하고 있었고, 이 무능력이 탄로 날까 봐 항상 불안하다고 했다.

 정신분석을 통해 이런 성격을 갖게 된 숨겨진 동기가 밝혀졌다. 그는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성적인 과잉자극을 받아왔다. 아버지는 친절하고 착한 분이셨지만 마음이 연약한 공처가였다. 어머니는 번번이 아버지를 심하게 꾸짖었고 경멸했다. 아버지는 경제적으로도 무능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침실에서 쫓아 냈고, 그 자리에 어린 그를 끌어들였다. 실제로 무슨 성관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린 그는 어머니와 함께 자면서, 무서운 성적 흥분과 이에 따르는 불안을 경험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아들을 훈계할 때도 어머니는 아버지를 책망하고 아들 앞에서 아버지를 무력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 결과로 그는 자기 노력 없이 어머니 덕에 에디푸스 콤플렉스의 승리자가 되었다.

 그는 승리자가 되었지만 어머니에 의해 주어진 것일 뿐, 자신의 노력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아버지를 무능력하게 만드는 일에 어머니와 공모했다는 죄책감이 비의식 속에 있었다. 그의 성공은 어머니의 것일 뿐, 자신의 것은 아니었다. 그가 자신감 없고 우울한 성격이 된 원인이 여기에 있었다. 예를 들어, 성장 후 그는 사업상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것을 자신의 것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부당하게 승리를 쟁취한 것처럼, 그의 인생의 모든 성공은 부당하게 쟁취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비의식에서는 이 부당한 이익을 언젠가 주인이 찾아갈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것이 그의 갈등의 핵이었다. 에디푸스 콤플렉스의 잘못된 해결이 문제였다.

 그의 결혼상대 선택도 흥미로웠다. 그는 부잣집 딸과 결혼했다. 이런 결혼의 비의식적 동기가 이미 어린 시절에 준비되어 있었다. 유년기에 시작된 비의식적 패배감 때문이었다. 즉 세상과의 경제적 싸움에서 항상 패배할 것이라는 생각이 그의 비의식에 깔려 있었다. 그래서 그는 돈 많은 부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의 그는 빈틈없고 성공적인 사업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부인과 성생활도 잘 하지 못했다. 부인의 접근을 두려워했고, 조루증이었고, 가끔은 임포텐스(impotence)가 되었다. 그의 비의식 속에 자신의 성기를 아버지에게서 훔친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례없는 사업적 성공을 거두고도 우울한 성격이 된 것이나 성생활 장애 등의 원인이 유년기에 시작된 것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경험한 갈등을 어른이 된 후에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어른이 되었고 충분히 독립적으로 살 수 있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활은 어린 시절의 지배를 받고 있다. 브랜너(Brenner C, 1976)는 이런 현상을 "어른 속에 아이가 살고 있다(child-within)."라고 표현했다, 이 말은 정신결정론을 한 마디로 잘 표현해 준다. 어떤 행동도 원인이 있는 것이다.

 

 

 

 

 

 

 

 

 

 

2. 대상관계이론

 

 어린이의 대상관계를 강조하는 이론으로 어릴 때의 대상관계가 성인의 정신생활에서도 계속된다는 이론으로 현재의 인간관계는 이미 과거에 이루어진 관계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즉, 어릴 때 내재화된 대상관계가 그 후 모든 대인관계에서 반복되고 재현된다는 것이다. 내재화란, 어린이가 대상들을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고 인식하며, 자신의 상상대로 대상을 만들기도 하여 그 이미지를 마음속에 자신의 일부로 갖게 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한편은 학대하고 상대편은 학대받는 관계를 내재화한 아이는 성장 후에 인간관계에서 자신도 모르게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만든다. 대상관계의 내재화는 대부분이 유아적이고 유치한 현태의 인간관계를 내재화하고 있다. 이것이 수정되지 못하고 마음 속에 고착되어 있으면 인간관계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성장 후의 분석상황에서는 전이 형태로 재현되어 나타난다. 따라서 현재 분석가와의 사이에서 경험하고 있는 전이를 잘 분석해 보면 환자의 비의식에 있는 내적 대상관계를 볼 수가 있다.

 그래서 전이를 치료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대상관계 이론이 현대 정신분석에 공헌한 것 중 하나는 전이를 통해서 환자의 내적 대상관계를 파악하게 된 것이다. 전이를 내적 대상관계의 재현으로 보는 개념은 오늘날의 분석기법에 큰 도움이 되었으며 정신분석의 가장 핵심적인 기법이 되었다.

 

* 병적인 내적 대상관계가 불행한 결혼생활과 신경증의 원인이 된 여인의 정신분석(분석가: 런던 대학 조셉 산들러 교슈) 증례

 

 T부인은 50세이고 회사의 사장입니다. 이혼녀였고 장성한 두 아이를 데리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란성 쌍둥이였고, 쌍둥이 여동생은 4남매 중 막내였습니다. 내게 분석을 받으러 오기 전에 다른 지방에서 수 년동안 분석을 받았지만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불안 발작과 히스테리성 증세를 포함한 많은 전환장애의 증세를 겪었습니다.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에서도 문제가 많다고 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T부인은 동갑내기 남자와 동거를 했는데, 늘 싸움만 했습니다.

 그들의 관계는 가학-피학적 관계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남자는 가학자였고, 그녀는 피학자였습니다. 그녀는 남자를 은밀하게 자극하여 화를 내게 만듭니다. 때로는 노골적으로 남자를 성내게 하기도 했는데, 그는 쉽게 걸려들어 화를 냈습니다. 그래서 그는 때로 그녀를 심하게 욕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녀에게 창피를 주기도 했습니다.

 이상한 것은 남자는 그녀에게 극도로 화가 나 있는데, 그녀는 전혀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다만 굴욕감과 우울에 빠질 뿐이었습니다. 얼핏 보아서는 왜 그들이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싸웠습니다. 성생활은 횟수도 드물고 만족감도 없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성생활에 협조를 해주지 않는다고 불평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녀는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합니다. 자위행위를 할 때 이따금씩 오르가슴을 느낄 뿐입니다.

 분석 첫 해에 밝혀진 것은, 그녀가 자신의 가학소원과 경쟁소원에 대해 매우 심한 죄책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아주 똑똑하고 재주가 있는 쌍둥이 여동생과 어머니에 대한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항상 자신의 성공을 억제해 왔고, 어릴 때는 읽기를 잘하지 못해서 쌍둥이 동생보다 뒤떨어졌습니다. 사실상 그녀는 놀랍도록 똑똑한 여자였고 신경증 때문에 어려움이 많은 속에서도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직장에서도 그녀는 동료들의 실패에 대해서 가차 없이 비난했고, 동료들이 불성실하다고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T부인의 생활에는 특히 자기 파괴적인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그녀는 자주 지갑이나 열쇠를 잃어버립니다. 갈 수 없는 날짜의 극장표를 삽니다. 기차를 잘못 타기도 하고 중요한 서류를 분실하는 등의 사건입니다. 그러나 분석을 시작한 첫 1년 동안 그녀의 심한 죄책감이 풀려 나오면서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내부의 경쟁심과 공격, 분노를 이해하자 이런 자기 파괴적인 사건들이 감소했습니다.

 분석이 2년째로 접어들었을 때 양상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치심과 굴욕감이 더욱 심해졌는데, 이것은 전이 속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그녀는 분석가에 대한 생각도 말하지 않으려 피했고, 가족에 대한 생각도 말하지 않으려고 회피해 버렸습니다. 분석가를 골탕먹이려는 것입니다. 그녀가 가해자 역할을 맡고 나를 피해자의 자리에 두었습니다. 예를 들어, 그녀의 저항을 보면, '분류하기, 혹은 꼬리표 붙이기'라고 내가 이름 지어준 메커니즘을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은 내가 자기도취적이라는 거군요.", 혹은 "이것은 투사지요?" 하는 식으로 꼬리표를 붙여 처리해 버렸습니다.

 치료가 잘 되어 이제 T부인은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치심과 굴욕감으로 괴로워하며 이것을 번번이 타인에게 투사하는 것으로 처리하는 자신을 드러내 보일 수 있었습니다. 이 투사 때문에 분석의 첫 수개월 동안 타인에게 엄청나게 많은 비난을 퍼부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고자 하는 욕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동거하고 있는 남자는 물론 직장 동료까지도 무의식적으로 곤경에 빠뜨리고자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동거하고 있는 남자는 그녀의 이런 태도에 대해서 폭력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그 이유는 그도 역시 죄책감이 많았고 수치심을 잘 느끼는 성격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폭발적으로 행동했기 때문에 그녀가 그를 비난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도발은 그녀가 해 놓고 비난은 남자만 받습니다. 말하자면 도발의 정신기제를 사용하여 그녀는 자신의 수치심을 그에게 줘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가 이 남자와 이혼하지 않고 계속 살게 하는 어떤 끈 같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녀의 수치스런 면들과 사납고 가학적인 면을 가져가버리는 운반자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그가 필요했고, 그에게는 그녀가 필요했습니다. 흥미 있는 것은 수년 전에 전 남편과 이혼했을 때의 이혼 사유입니다. 전 남편은 그가 말이 없고 무덤덤하고 재미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헤어졌다고 했습니다. 추측해 보면 전 남편은 그녀의 도발에 반응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분석으로 통해 이해된 것은 T부인의 내적 대상관계는 한편으로는 내적 대상에게 창피와 모욕을 주는 가학적 관계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 대상으로부터 창피와 모욕을 당하는 피학적 관계를 번갈아가며 갖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어머니와 여동생관의 관계에서 유래한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동생만 예뻐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억울했습니다. '천대받는 자신'과 그녀를 '천대하는 어머니와 동생'과의 관계가 그녀의 내적 대상관계였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입니다. 그녀는 동거하는 남자와의 현실적인 관계를 내적 대상관계로 바꿔 놓았습니다.

 가해자인 내적 대상, 즉 어머니나 동생을 피해자인 자신의 관계로 재현시켰던 것입니다. 남자를 화나게하고, 자신은 맞고 욕 얻어먹는 피해자가 됩니다. 직장 동료들을 비난할 때는 자신이 가해자가 되고, 동료들은 희생자가 됩니다. 예를 들어갈 수 없는 날짜의 극장표를 샀을 때는 피할 수 없이 같이 가기로 초정된 사람에게 실망을 줄 것이며 자신에게도 실망을 줄 것입니다. 같은 기제를 직장 대인관계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분석작업의 많은 부분은 T부인의 병적인 내적 대상관계의 재현 문제에 모아졌습니다. 이런 내적 구조의 대상관계 특성은 마침내 치료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대상관계 이론의 중심 단어는 '내재화', '내적 대상관계', '내적 대상관계의 재현'이다. T부인은 어머니와 자신의 관계를 내재화했다. 그래서 마음 극장의 무대에서 가학적인 어머니에게 구박받는 어린 T부인이 억울하고 서럽고 두려워 울고 있다. 가학-피학의 관계가 T부인의 내적 대상관계이다. 현실생활에서 어머니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비정한 어머니로 착각하게 된다. 내적 대상관계가 곧 재현된다. 이럴 때는 이유 없이 그 사람이 무섭고 밉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고 대인관계가 어려워진다.

 그런데 이런 내적 대상관계는 비의식에 숨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두려움의 원인을 이해할 수 없다. 정신분석은 내적 대상관계를 보여준다. 특히 분석가를 내적 대상으로 보는 전이가 생기면 분석가와의 관계 속에서 내적 대상관계를 경험하며 이런 경험은 피분석가로서는 잊을 수 없는 것이며, 놀랄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