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삶의 순간들에서 마음의 평정을 깨뜨리는 사건들이 일어나게 되면 불안해진다. 특히, 사회적, 도덕적으로 용납되지 못하는 성적 충동, 공격적 욕구, 미움, 원한 등은 위험불안을 일으키는데, 이 불안은 본능적 욕구에 대항하는 초자아의 위협이 원인이다. 이때 자아는 마음의 평정을 회복하려고 노력하는데, 이것이 방어기제이다.
자아는 방어기제를 이용해 한편으로는 불안을 피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본능 욕구를 부분적으로나마 충족시킨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마음의 갈등과 충돌이 해소되고 평정이 회복된다. 이 과정에서 본능적 욕구와 초자아의 요구 사이에서 타협이 일어나고 절충형성이 이루어진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여 나름대로의 욕구 충족을 얻고 마음의 평화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 절충형성의 결과가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 증세이고, 성격의 특성이다.
본능적 욕구와 초자아의 요구, 그리고 이들과 자아 사이에서의 충돌을 갈등이라고 한다. 이 갈등이 모든 신경증의 뿌리가 된다. 따라서 방어기제는 갈등을 처리하기 위한 자아의 노력이다. 이 모든 과정은 무의식에서 일어나기때문에 당사자는 이를 인식하지 못한다. 자아는 상황에 따라 필요한 방어기제들을 자기 마음대로 자동적으로 동원하며, 동원된 방어기제들은 자동적으로 작동한다. 한 번에 한 가지 이상의 방어기제가 동원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아는 방어기제를 정신병리적인 상태뿐만 아니라 정상상태에서도 사용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성격상의 특성이란, 알고 보면 그가 어떤 방어기제를 주로 쓰고 있느냐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분석 치료는 성격의 개조를 목적으로 하는데, 병적 방어기제들을 건강한 것으로 재배치하는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아의 방어기제는 다음과 같다.
1. 억압
억압은 불안에 대한 1차적 방어기제이다. 가장 흔히 쓰는 방어기제로 의식에서 용납하기 힘든생각, 욕망, 충동들을 무의식 속으로 눌러 넣어버리는 것이다. 억압을 통해서 자아는 위협적인 충동, 감정, 소원, 상상, 기억 등이 의식되는 것을 막아 준다. 특히 죄의식, 창피 또는 자존심의 손상을 일으키는 경험들은 고통스러운 불안을 일으키므로 특히 억압의 대상이 된다. 억압에는 정신 에너지가 사용된다. 억압으로 불안을 방어하려고 하다가 실패하면 투사, 상징화 등의 다른 방어기제가 동원되며, 그 결과로 신경증이나 정신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억압이 많을수록 편견이나 선입견이 많아지는데, 그 이유는 억눌린 생각들이 풀려나오지 못하고 억눌려 있기 때문이다. 억압이 성공적일 때는 본능적인 욕구나 금지된 욕망이 노골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방어되므로, 사회적, 도덕적으로 잘 적응하는 생활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억압으로 인해 비의식이 생긴다. 그리고 억압을 통화해야 치료가 일어난다. 정신분석의 작업은 억압을 극복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억압은 정신분석 이론의 초석인 것이다.
2. 억제
억제란 의식적으로, 혹은 반의식적으로 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실연당한 젊은이가 연인과의 추억을 잊으려 하는 경우에 사용하는 방어기제이다.
3. 취소
비의식에서 자신의 성적 욕구 혹은 적대적인 욕구로 인해서 상대에게 피해를 주었다고 느낄 때, 그에게 준 피해를 취소하고 원상 복귀하려는 행동을 할 때 취소라고 한다. 속죄행위가 이 취소에 속한다.
한 처녀가 식탁 너머에 앉아 있는 동생이 너무 아름다워 보여서 질투를 느끼고 이런 생각을 했다.
'저 애의 이가 몽땅 빠져 버렸으면 좋겠네.'
이 생각이 그녀의 비의식 속에서 죄책감을 일으켰다. 그녀는 곧 벌떡 일어나서 치아를 튼튼하게 해 주는 우유를 컵에 가득 따라 동생에게 주었다. 이 행동은 취소기제에서 나온 것이다.
부정으로 번 돈의 일부를 자선 사업에 쓰는 경우, 다이너마이트로 번 돈으로 노벨상을 만드는 행동이 취소 방어기제에 속한다. 부인을 때린 남편이 꽃을 사다 주는 행위도 취소다. 많은 종교의식의 기저에 취소 방어기제가 있다.
4. 반동형성
반동형성이란 겉으로 나타나는 태도나 언행이 마음 속의 욕구와 반대인 경우이다. 비의식의 밑바닥에 흐르는 생각, 소원, 충동이 너무나 부도덕하고 받아들이기 두려운 것일 때, 이와 정반대의 것을 선택함으로써 의식으로 떠오르는 것을 막는 과정이다.
남편이 다른 여자와 관계를 해서 아이를 낳아 왔다. 이 딸을 과잉 보하하는 부인이 있었다. 딸을 볼 때마다 그 애의 생모 생각이 나서 딸을 죽이는 상상을 하고 놀라곤 했다. 그럴수록 부인은 딸을 정성껏 보살폈고 딸이 눈에 안보일 때는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있는 상상에 놀라 미친 듯이 찾아 나서곤 했다. 이런 부인의 모습이 남편에게는 천사처럼 보였지만 부인의 딸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의 행동은 증오에 대한 반동형성의 결과였다.
역공포도 반동형성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는 두려움이 의식 되는것을 피하기 위해 오히려 두려운 상황으로 접근해 들어가는 것이다. 괴기 영화가 인기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동형성이 이성의 한계를 넘지 않고 적응에 큰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한 불안을 막는 유용한 방어기제가 될 것이다. 취소기제와 연관이 있고 동일한 발달단계(2, 3세)에서 일어난다. 때로는 과잉보상이라고도 한다.
5. 상환
비의식의 죄책감을 씻기 위해 사서 고생하는 행동을 상환이라고 한다. 한 가장이 가족들은 기니 끓일 것이 없어서 굶고 있는데, 조금이라도 돈이 생기면 몽땅 자선사업에 바쳐 버렸다. 이런 가장이 상환의 좋은 예이다.
6. 동일화
동일화 혹은 동일시는 윗사람이나 부모 등 중요한 인물의 태도와 행동을 자기 것으로 만들면서 닮는 것을 말한다. 동일화는 자아와 초자아의 형성에 가장 큰 역할을 하며 성격발달에 가장 중요한 방어기제다. 동일화를 통해 부모가 자식의 성격 내부에 들어오게 된다. 그러나 모든 부모에게는 인격적인 결함이 있기 때문에 '어떤 부모를 닮느냐'에 따라 성격의 구조가 달라진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모든 부모가 결함이 있고 아이의 경험이 다양하기 때문에 완벽한 동일화는 없다는 것이다.
동일화의 예는 아빠가 의사인 아들이 청진기나 주사기를 갖고 놀기 좋아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독서, 연극, 영화에서 재미를 느낀 이유는 주인공과 자기를 동일화하고 주인공과 함께 울고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일화는 비의식의 과정이며 그 동기는 대상이 갖고 있는 힘을 자기 것으로 하려는 소원이다. 동일화에는 몇 가지 형태가 있다.
*적을 모방함 또는 금지된 대상과의 동일화: 닮지 않아야 될 사람의 바람직하지 못한 특성이 어린 아이에게는 힘으로 보이기 때문에 닮으려고 하는 동일화이다.
*공격자와의 동일화: 두려운 대상의 특징을 닮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그 대상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으로 이 과정을 통해 초자아가 형성된다. 아이가 "내가 도깨비다!"라며 도깨비 흉내를 내는 것은 도깨비와 동일화 함으로써 도깨비 공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병적 동일화: 이상적 인물에 붙어 공생하며 그 인물이 가진 힘을 누려보려는 자아의 시도이다. 상대의 힘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면 병적 동일화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힘센 이의 행동을 흉내 내어 자신도 그렇게 되었다고 믿고 현실에 적응하는 것으로 진정한 의미의 주체성도 속마음에서 우러나는 감정 경험도 없이 자신의 주관 없는 기회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아첨꾼이나 신흥 종교의 광신도가 그 예이다. 경계선 장애 환자도 이를 많이 쓴다.
*공감: 상대의 입장이 되어 생각이나 감정이 내 것처럼 느껴지고 이해되는 현상으로 일시적이고 한정적이지만 건강한 형태의 동일화이다. 분석가가 환자의 고통을 같이 느끼고 이해하는 것이 그 예로, 언어적 이해가 아닌 마음으로의 이해인 공감적 이해는 최고 수준의 이해이고 정신치료적 효과를 갖는다.
*합일화와 함입: 미숙하고 원시적 형태의 동일화로 합일화는 자기와 자기가 아닌 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유아기에 일어나는 동일화(식인종이 고귀한 특성을 갖고 싶어서 그런 특성을 가진 사람을 잡아먹는 것)이며 함입은 유아가 좀 더 커서 적어도 자기와 자기가 아닌 것은 구별하는 시기에 일어나는 동일화(남편이 죽은 뒤 슬픔에 빠진 부인이 마음속에 가진 남편의 이미지와 생시의 남편을 동일화하여 자기 이미지에 대한 부인의 태도나 행동이 마치 남편에게 하듯 하는 것, 이미 죽어버린 그와 대화하거나 그가 미워 살해하기 위해 자기를 죽이기도 한다)이다.
7. 투사
투사란 자신이 비의식에 품고 있는 공격적 계획과 충동을 남의 것이라고 떠넘기는 정신기제이다. 아이가 자신의 일부로 생각하는 대변을 밖으로 밀어 내는 배변행위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 자신의 실패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가장 미숙하고 병적인 정신기제이며 망상이나 환각을 일으키는 정신기제이다. 투사는 부정과 전치의 방어기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유치한 인격의 사람일수록 투사를 많이 쓴다. 억눌리고 가난한 사람의 이익을 걱정하는 사람들 중에 집 파출부에게는 지나치게 인색하고 몹시 심하게 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권과 평화를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 자기 여동생을 잔인하게 구타하는 사람도 있고, 부인이 정에 굶주려 우울증에 빠진 경우도 있다. 인권을 위한 투쟁은 필요하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적으로 이 일에 헌신한 것을 알고 있지만 어떤 경우는 자신의 분노나 수치심을 은폐하기 위해 자기 문제를 외부 대상에게 투사한 결과일 수 있다.
8. 자기에게로의 전향
공격 충동이 타인이 아닌 자기에게 향하는 것으로 엄아에게 야단 맞은 아이가 화가 나서 자기 머리를 벽에 부딪치는 것에서 볼 수 있다. 남에 대한 분노가 자신에게 향하므로 자기 공격이 생기며 우울증이 오기도 한다.
9. 전치
원래의 비의식적 대상에게 준 감정을, 그 감정을 주어도 덜 위험한 대상에게로 옮기는 과정이다. 도덕적 타락으로 비의식적 죄책감에 휩싸여 강박적으로 손을 씻거나 버스 손잡이도 장갑을 껴야 잡을 수 있는 것은 도덕적 불결에 대한 죄책감이 물리적 불결로 전치된 것으로 손을 씻음으로써 도덕적 청결을 회복하려는 노력이다.
10. 대체형성
목적하던 것을 갖지 못하게 되면서 생기는 좌절을 줄이기 위해 원래의 것과 비슷한 것을 취해 만족을 얻는 것으로 '꿩대신 닭'이란 속담이 그 예이다. 대체형성은 대체물이 되는 '대상'에 중점을 두고, 전치는 '감정'에 중점을 두어 말한다는 차이가 있다.
11. 부정
발달 단계 중 최초이면서 가장 원초적인 방어기제의 하나로 의식화되면 도저히 감동 못할 생각이나 욕구, 충동 등을 비의식적으로 부정하는 것을 말한다. 영화의 무서운 장면에서 눈을 가리는 아이, 당뇨 진단을 받았는데 아무렇지 않다고 믿고 병원 가기를 거부하거나, 암으로 죽어가면서도 자신은 암이 아니라 오진이라고 주장하는 환자 등이 이 경우다. 고통스럽더라도 피할 수 없으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치료의 문이 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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